[통합의 길, 시민의 힘 토론회] 제1부 2016년 한국사회 진단과 시대정신
2016-07-14 09:37:59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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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 5 20일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통합의 길, 시민의 힘> 토론회 주요 내용을 발췌한 글로 <정책과 비평> 제3호에 게재한 내용입니다.

[지상중계 1부]


제1부: 2016년 한국사회 진단과 시대정신


* 사회: 김인회 인제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발표: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김호기(1발표) : 제가 받은 주제는 2016년 한국사회 진단과 시대정신입니다. “그대들이 시대정신(Zeitgeist)이라 부르는 것은 실로 매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저자(著者) 양반들 자신의 정신이라네(Goethe, 1999).”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유명한 말입니다. 시대정신이라고 하는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라는 독일어가 최초로 쓰인 텍스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말은 헤겔의 역사철학을 거쳐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한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 그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정신적 태도와 이념이 시대정신입니다.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입니다.

이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4년 전 2012년 대통령선거 때만 해도 복지국가·경제민주화·국민통합 등 시대정신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지만, 언제부턴가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 시대정신은 선거용으로 소비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요즘처럼 한국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 지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시대정신은 밤하늘의 북극성과도 같은 미래 좌표로서 의미를 갖습니다. 시대정신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시대의 불확실성에 있습니다. 우선 국내적 차원을 말씀드려보자면,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시대정신인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졌던,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유토피아적 에너지’가 소진된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화 시대가 가져온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서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라는 역설적인 현실이 쓸쓸한 현재의 시대적 풍경을 이룹니다. 이 쓸쓸함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불신으로, 다시 분노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분노는 우리 사회의 모든 세대를 가로지르는 키워드입니다. 2030세대는 청년실업과 구조조정에 분노하고, 4050세대는 퇴출의 공포와 노후 불안에 분노하며, 6070세대는 지나온 삶이 온당히 평가받지 못한다고 분노를 삭이고 있습니다. 분노 사회야말로 한국사회의 현재적 초상입니다. 분노의 단적인 표현이 아래에서 다시 언급될 ‘헬조선’입니다. 저는 한국 사회를 헬조선으로 파악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이런 극단적 표현이 유행하게 된 원인과 배경은 주목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적 차원에서도 시대적 불확실성은 두드러집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에서 포스트신자유주의로의 체제 변동은 여전히 그 방향을 알기 어렵습니다. 2011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점령 시위부터 2014년 유럽연합(EU) 선거에서 나타난 극우정당의 약진을 거쳐 최근 미국 대선에서 볼 수 있는 - 경희사이버대 안병진 교수가 지적한 -‘기존 백인 문명의 황혼기’를 상징하는 ‘트럼프 현상’과 ‘뉴딜 민주주의 복원의 꿈’을 상징하는 ‘샌더스 현상’의 공존에 이르기까지 통합의 구심력보다는 분화의 원심력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미래를 예견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사회’야말로 세계사회의 현재적 초상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먼저 한국사회의 주요 문제를 저성장·불평등, 위기의 사회통합을 중심으로 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어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서 우리가 어떤 것들을 고민해야 할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올해 우리 대한민국을 특징짓는 경제·사회적 현상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저성장과 불평등입니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저성장과 불평등이 가져오는 다양한 결과들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먼저 저성장에 대해 말씀드려 보자면, 성장에 대해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고성장이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성장에 적응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장 중독은 압축 산업화가 가져온 병폐 중 하납니다. 그 과실을 어떻게 적절히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 없이 덩치만 일방적으로 키우려는 성장은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사회갈등으로 인해 지속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성장도 저성장 나름입니다. 우리와 같은 중견국가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3% 정도의 성장률이 요구됩니다. 문제는 성장의 환경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중국 경제의 위협, 고령사회로의 진전에 따른 인구 절벽과 그 결과인 소비 절벽의 가시화, 무엇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뉴 노멀’의 일상화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환경을 변화시켰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성장률은 2% 후반 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민간경제연구소들은 올해부터 2020년까지 잠재성장률이 2%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낙수 효과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성장 없이 국민 다수가 원하는 분배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출 전략의 모색, 신성장동력의 확충, 내수시장의 활성화 등 저성장에 적극 대응하는 정책 패키지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저성장 시대에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불평등의 구조화입니다. 불평등의 현실을 잘 보여준 것이 지난해 큰 관심을 모았던 사회적 신분과 불평등에 대한 담론인 ‘수저계급론’입니다. 수저계급론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는 네 계급이 존재합니다.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가 그들입니다. 금수저가 최상류층이라면 흙수저는 하류층입니다. 두 계급은 출발 지점부터 다릅니다. 영어유치원, 어학연수, 낙하산 취직이 최상류층의 성장 과정이라면, 서민 어린이집, 알바 생활, 자발적 백수가 하류층의 성장 과정입니다. 금수저에게 은퇴 후 해외여행을 포함한 행복한 노후가 보장되어 있다면, 흙수저에게는 쪽방촌에서 안타까운 고독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저계급론의 등장과 연관해 주목할 것은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와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불평등 연구입니다. 피케티가 노동소득보다 재산으로부터 얻게 되는 수익이 갈수록 중요해진다고 주장했다면, 김낙년은 한국사회에서 전체 자산 형성에 기여하는 비중에서 상속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들의 견해가 맞다면,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지 않는, 불평등이 갈수록 공고화되고 구조화되는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입니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뉴 캐피털리즘>에서 신자유주의가 갖는 그늘의 하나로 능력주의의 폐해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입시 경쟁, 취업 경쟁, 퇴출 공포로 나타나는 생존 경쟁은 신자유주의가 강제한 능력주의의 살벌한 전쟁터입니다. 능력주의와 비교할 때 수저계급론은 일종의 아리스토크라시(aristocracy)인 귀족주의입니다. 재능보다는 태생이 중요하다는 것이 귀족주의의 핵심입니다. 금수저의 강고한 귀족주의와 나머지 수저들의 과도한 능력주의가 기이하게 공존하고 결합되어 있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민낯입니다.

수저계급론에 큰 공감을 표한 이들은 특히 젊은 세대입니다. 신계급사회로 가는 현실을 헬조선이라고 풍자했습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한 후 지난 70년 동안 한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모범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사례로 꼽혀 왔지만, 정작 현재의 사회 현실에 불만·불신·불안을 느끼는 국민들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헬조선과 수저계급론은 영광의 과거와 고뇌의 현재가 충돌하는 아이러니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주목할 것은 이런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문화적 불평등의 구조적 조건을 이룬다는 점입니다. 교육·소비·문화생활에서 계층 간에 커지는 크고 작은 격차들은 공동체를 분절화하고 결국 사회통합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정규직을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고용정책, 증가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할 재정정책, 위기의 공동체를 복원할 문화정책의 일대 개혁 없이 불평등 해소는 요원한 일입니다.

불평등 상황이 이러하다면, 사회통합에는 노란불이 아니라 빨간 경고등이 이미 켜졌다고 봐야 합니다. 사회통합은 스스로를 사회 구성원으로 자각하게 하고 동료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저희 사회학에서는 말합니다. 이러한 사회통합이 약화되는 데는 물질적 요인과 정신적 요인이 존재합니다. 심화된 양극화와 취약한 사회복지가 물질적 요인이라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사회를 생각하는 극단적 이기주의는 정신적 요인을 이룹니다. 물질적 요인과 정신적 요인은 별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먹고사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사회나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 그 사회나 국가는 낯선 존재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결국 이 세상은 살아남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는 사냥터로 이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폴란드계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에 따르면, 현대사회에는 두 가지 삶의 전략이 존재합니다. ‘정원사’와 ‘사냥꾼’ 모델이 그것입니다. 정원사는 앞선 모더니티 시대의 인간상입니다. 세계와 삶은 하나의 정원이며, 정원사는 자신의 계획대로 정원을 가꿔왔습니다. 바우만은 이런 행복한 시대가 이미 끝났다고 주장합니다. 이제 우리 인간은 사냥꾼이 되어 끝없이 펼쳐진 사냥터에서 짐승들을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냥꾼이 되느냐, 아니면 사냥감이 되느냐가 이 우리 시대의 현주소라는 것이 바우만의 견해입니다. 바우만의 주장을 적용해보면, ‘경쟁에 의한, 경쟁을 위한, 경쟁의 사회’가 한국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입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가야 할 직장이 없어도 이력서에 스펙을 빼곡히 써넣어야 하는 청년 세대,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동료들과 또 다른 경쟁을 벌여야 하는 30대, 그리고 직장에서 은퇴한 다음 치킨집·피자집을 열어도 거기에 또 다른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는 50~60대는 바로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경쟁으로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게 한국사회의 현실이며, 이런 사회에서 사회통합이 약화되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사회통합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구체적으로 자살률이 증가하고, OECD 최고입니다. 범죄율이 높아지며, 때로는 특정 세력을 ‘악마화’함으로써 통합 약화의 원인을 딴 곳으로 돌리려는 정치적 선동주의가 강화됩니다. 지난해 9월 JTBC 보도에 따르면, 2040세대 가운데 88%가 한국이 싫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생각해본 적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선조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광복을 맞이해 70여 년이 된 현재, 우리 기성세대는 대체 어떤 사회를 일구어온 것일까요. 현실이 이토록 곤궁한데 화려했던 과거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이 바로 2016년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지난 50여 년 동안 모범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왔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우리 앞에 펼쳐진 사회는 통합이 사실상 고갈된, 아주 당혹스럽고 낯선 모습을 보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회를 이런 상태로 계속 놓아둔다면 한국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의미를 상실하는 사회 해체 과정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상적인 사회로 복귀하기 위해 사회통합 제고를 서둘러야 하는 까닭은 너무도 분명해 보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시대정신 문제로 돌아가면, 이러한 분노와 불확실성의 시대에 정작 시대정신이 실종됐다는 사실이 더없이 안타깝습니다. 밤하늘에 북극성이 없으니 망망대해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이 저만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탐구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이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변화라면, 시대정신은 그 변화의 분명한 방향을 선사합니다. 둘째, 갈수록 멀어지는 듯한 선진국 진입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새로운 사회발전의 좌표에도 시대정신은 분명한 목표를 제공합니다. 무엇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될 수 있을까.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은 저성장, 불평등, 위기의 사회통합이 국가·시장·시민사회 중 어느 하나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정부와 국회를 포함한 정치사회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점에서 지난 4월 총선에서 제시된 주요 정당들의 정책 대안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총선에서 제시된 정책 기조에 대해서는 저는 두 가지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째, 저성장과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 기조로 새누리당은 ‘경제 활성화’를, 더민주당은 ‘경제 민주화’를, 국민의당은 ‘공정 성장’을, 정의당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내세웠습니다. 문제는 경제 활성화와 경제 민주화가 국민 다수의 시선에서는 부분적인 해법으로만 보인다는 점입니다. 낙수효과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경제 활성화만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고, 제4차 산업혁명의 도전이 구체화되는 상황에서 경제 민주화만으로는 저성장을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경제 활성화와 경제 민주화는 이중의 과제입니다. 이 두 목표를 생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그 선후관계와 상관관계를 분명히 하는 제3의 시대정신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단계로써의 경제민주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2단계로써의 경제활성화 전략을 지금 모색할 때만 저성장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분노사회를 해결할 새로운 시대정신 또한 중요합니다. 분노의 일차적 원인은 경제적 불평등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못지않게 주목할 것은 규범적·도덕적 자원의 고갈입니다. ‘헬조선’, ‘수저계급론’, ‘각자도생’ 등이 함의하는 바는 공동체의 붕괴이며, 이 붕괴를 제어하고 역전시키는 데에는 사회·문화통합을 새롭게 일궈내는 방법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요컨대, 저성장과 불평등, 그리고 위기의 사회통합에 맞설 시대정신을 주조하고 추구해야 할 숙제를 우리 정치사회는 물론 지식사회와 시민사회는 시급히 풀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정신이 품어야 할 세 개의 가치는 ‘혁신’, ‘공존’, 사회적 약자의 ‘보호’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대정신에 이런 가치들은 반드시 담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시민적 대표성을 구현하기 위한 경제와 정치의 혁신, 상대방을 악마화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다원주의적 공존,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의 보호야말로 새로운 시대정신이 품어야 할 키워드들입니다.

혁신·공존·보호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시대정신의 탐구야말로 2017년 12월 대선으로 가는 도정에 부여된 가장 중대한 과제 중 하나일 것입니다. 시대정신은 시민들이 발견하는 사회적 합의라는 점에서 특정 집단이 그것을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소중한 친구여,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네. 그러나 삶의 황금 나무는 초록색이지.”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페스토펠레스(Mephistophills)가 파우스트에게 해주는 말입니다. 내년이면 6월 민주화항쟁 30주년이 됩니다. 민주화 시대 30년을 눈앞에 두고 우리 시민들이 새삼 발견한 것은 - 저는 세월호 참사가 그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 어떤 이념도 생명을, 삶을, 인간을 선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정치사회든, 지식사회든, 언론을 포함한 공론장이든 인간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시대정신에 대한 활기찬 토론을 내년 12월까지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이것으로 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해구 (2발표) : 김호기 교수께서는 사회전반적인 시대정신을 발표해 주셨고, 저는 총선에 초점을 맞춰 ‘20대 총선결과는 어떠한 정치적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국사회가 뭔가 막다른 골목에 처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20대 총선, 내년 19대 대선 같은 양대 선거를 통해서 정치적으로 어떤 돌파구가 생기지 않으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의미 깊다고 봅니다. 우선 제가 19대, 20대를 비교해서, 각 권역별로 표가 얼마만큼 움직였는가를 계산해 봤습니다. 앞부분에서는 그 얘기를 드리고, 뒷부분에서는 이 현상이 앞으로 어떤 정책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수도권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수도권 지역구를 보면 새누리당 득표율이 한 7.7% 떨어졌습니다. 표로 계산하니 약 92만 표 정도입니다.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이 대패를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더민주는 한 2.5% 정도, 약 30만 표 떨어졌습니다만, 사실 더민주는 그 전에 분당이 되지 않았습니까? 분당이라는 상황 속에서 상당히 잘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정당투표율은 하락률이 큽니다. 새누리당은 10.58%, 126만 표가 되고, 더민주는 11.62%, 138만 표입니다. 모두 100만 표 이상 표가 떨어졌습니다.

다음으로 충청권을 봤습니다. 지난 19대에 자유선진당이 있었기 때문에 따로 계산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역구 선거는 새누리당이 약 6만 표 정도 올라갔습니다만, 자유선진당과 합당을 고려하면 거의 표가 안 올라간 거죠. 더민주는 약간 상승했습니다. 5.3%, 약 13만 표 정도 많이 받았습니다. 정당투표율은 새누리당은 2.58% 떨어졌고, 더민주도 5.66%가 하락했습니다. 새누리당이나 더민주에서 이탈한 표는 대부분 국민의당으로 가게 됩니다.

대경권, 대구·경북을 한번 봐주시죠. 지역구 투표는 새누리당이 5.6% 정도 하락합니다. 13만표 정도가 줄었지요. 더민주는 약간 상승했고요. 정당투표율은 새누리당이 12.12%, 약 27만표 정도 떨어지고, 더민주는 거의 하락율이 없습니다. 대구·경북이 새누리당의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데 정당투표율에서 한 10% 떨어진 것입니다.

부산·울산·경남을 봐주시죠. 지역투표율에서는 새누리당이 4.4%, 16만 표 떨어졌고요. 더민주는 오히려 7.3%, 26만표 늘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당투표율에서는 새누리당도 10% 정도 떨어졌고, 더민주도 3.2% 정도 떨어졌습니다. 상대적으로 부울경에서도 오히려 새누리당이 득표율 하락이 더 컸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 호남권입니다. 새누리당은 큰 변화는 없습니다. 지역구에서 더민주가 19대에 비해 15.8% 정도 떨어졌습니다. 표로 볼 땐 약 42만 표가 떨어졌고요. 정당투표율은 그 폭이 더 큽니다. 더민주가 19대에 비해 37.5%, 약 97만표 정도 떨어졌습니다. 정의당은 약 22만표가 하락했고요.

각 권역별로 본 것을 전국적으로 통계를 내봤습니다. 새누리당은 지역구에서 5%, 약 120만 표가 떨어졌습니다. 더민주는 0.9%, 22만표가 떨어졌는데, 상대적으로 거의 하락을 안 한편이죠. 그 다음에 정의당이 106만 표 정도 떨어졌습니다. 정당투표율을 보면 새누리당이 9.3%, 221만표 떨어졌고, 더민주는 10.9%, 259만표. 정의당도 73만표 정도가 떨어진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면 이런 결과가 앞으로 우리 정당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첫째, 저는 지역주의 완화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남지역주의가 완화된 것이 득표율에 나타납니다. 대경권, 부울경권 보면 지역구에서는 대체적으로 새누리가 약 5% 정도, 정당투표에서는 약 10% 정도 떨어졌습니다. 이건 ‘영남지역주의 약화’라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남지역주의는 해석이 분분합니다만, 호남지역주의 약화라고 표현하기보다는 호남지역주의의 분열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득표율로 보면 지역구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37.3 대 46.6입니다. 다음으로 정당득표율은 더민주 30.48%, 국민의당 47.49%입니다. 의석수가 아니라 득표율로 보면 표가 양당으로 분산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호남과 영남 양쪽을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볼 때 지역주의 완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고,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에서 벗어나면서, 표가 떨어지면서 다른 지역에서 수도권과 영남지역에서 표를 얻는 모습에서 전국정당의 모습을 갖추게 된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역주의와 관계없는 젊은 유권자들이 많아져 지역주의가 희석되는 효과가 있는데, 제가 볼 때는 이번에 투표율이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그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둘째, 여소야대의 3당 체제가 됐습니다.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야당이 협력을 하면 상당한 개혁입법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가 88년 노태우정부 초기에 야대여소가 되면서 민주개혁을 많이 했습니다. 3당 체제에는 여러 방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야권 연대를 해서 운영하는 경우가 있고,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공조하는 경우도 있고, 각자 독자적인 방식으로 할 수도 있는데, 대체적으로 세 당이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게 아닌가, 협치라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셋째, 제도적인 룰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들이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 선거제도 개편이나 개헌 문제 같은 것이죠.

87년 이후 정당 체제가 내년에 30년 한 사이클이 도는 것 같습니다. 이제 지역주의 정당체제는 무너질 때가 되었습니다. 일종의 전조 같은 게 이번 총선에서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선을 거치면서 한국정치가 변할지, 과거로 회귀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상당히 유동적인 상황에 있고,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권이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얼마나 더 해 줄 수 있습니까? 국민이 기회를 제공했는데, 정치권에서 특히 야권에서 어떻게든 잘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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